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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미루] 미루, 제 마지■ ■■을 ■어■■요. 이걸로 '■'가 ■■의 ■■ 있■건 ■이에■.

by 백표백제 2020. 11. 14.

2019. 1226

재업/백업글






 1월 1일, 새로운 해의 시작, 새로운 날의 시작. 여러 사람들이 말하기를 모든 걸 새롭게 다잡고, 마음가짐을 바꾸고, 한 살 더 나이를 먹었다는 것에 축하하는 날이라고 했다.


 "그러게요. 새로운 날의 시작이네요."


 동이 트는 걸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자주 사용하지 않아 녹이 슬어버려 끼이익하는 소름돋는 소리를 내는 창문을 열어 기대 앉았다. 동이 트기 시작한 아침 공기는 차가웠지만, 그런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는 행위에서는 차가움 따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맞아, 나는 일반적인 존재가 아니지. 다른 이들보다 체온이 낮으며, 상처를 입으면 피 대신 얼다 만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나의 눈물은 수십 초 만에 얼음 조각으로 바뀌며, 설령 신체가 절단된다 해도 수 초 만에 일반적인 얼음 덩어리로 변한다. 그런 몸은 정말로 일반적인 얼음일 뿐이지만, 곧 나 그 자체다.

 이런 저를 사랑한다니요, 이상해요. '그'의 귀에 닿지 않을 말을 중얼거린다. 물론 '그'는 내 앞에 있지 않다. 이제 곧 만나서, 함께 마지막 하루를 지내고 마지막 사랑의 말을 건네고,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겠지. 오늘은 '제'가 마지막으로 행복할 날일거에요, 미루.


 오늘로 마지막일까? 나시는 옴표네 집에 보내서 다행이다. 한동안 아이들이 돌아오는 일따위는 없을거야. ... 어쩌면 어제로 마지막일지도 몰라. 자랑스러운 우리 나시와 옴표. 수 분 동안, 함께 지내온 아이들에 대한 추억을 했다. '내가 없어도 잘 자랄거야. 원래 그런 아이들이니까.' 혼자서 그런 결론을 낸 채, 조금만 더 밖을 응시하다가 슬슬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만 했다.


 수십 분 간 밖을 보며 동트는 걸 지켜보다 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을 즈음, 또 다시 등골이 오싹해지는 소리를 내는 창문을 닫았다. 창문을 닫음과 동시에 가족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한구석으로 밀어둔다. 소중한 나의 아이들, 만약 너희가 지금 나의 바로 앞에 있었다면, 후회할지도 몰라. 그만두고 싶을지도 몰라. 하지만 너희가 내 앞에 나타날리 없지. 직접 말 못해서 미안해, 얘들아 미안해. 그런 부질없는 생각 따위를 하다, 친근한 집 안을 살펴본다. 그가 수줍게 인사하며 들어왔던 현관, 함께 앉아서 별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눴던 소파, 곁에 누워서 사소한 이야기를 했던 침대. 이젠 그런 일 없겠지.


 "... 슬슬 보러 갈까."


 동이 튼다, 고 하기에는 늦은 시간, 아침이 되었다, 고 하기에는 이른 시간.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발걸음을 내딛어야한다.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대화할까요? 수 분, 수 시간, 하루종일? 평소와 다름없는 작은 미소를 머금고 밖으로 향했다. 거리를 걷는다. 길을 걷는다. 미소는 잃지 않는다, 아니 애초부터 잃을 수 없는게 특징이자면 특징이었다.

신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장식품이 건물마다 흘러내리고 있다. 저마다 색다른 빛을 내뿜으며 시선을 집중시키려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서로가 눈에 띄기 위해서 앞다퉈 경쟁하고 있다. 그런 거리를 걷다보니 눈이 아파온다. 아직 올려지지 않은 셔터, 혹은 슬슬 올려지기 시작한 셔터에 비해서는 너무 화려한 풍경이었다. 그런 화려한 풍경 속,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다채롭고 아름다운 그를 만나기 위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미루, 좋은 아침이에요!"


 제가 먼저 미루를 보러 와버렸어요. 아, 물론 별다른 의미는 없어요! ... 오늘, 하루가 끝날 때까지. 같이 밖에 돌아다니지 않을래요? 아니면 미루 씨의 집에서 하루종일 머무는 것도 좋아요. .. 미루 씨가 원한다면 저희 집에서 하루종일 지내는 것도 좋고요. 아무런 대화 하나 짦은 문장 한 마디, 단어로조차 대화하고 싶지 않다고 해도 좋아요. 다 좋아요,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무엇이든, 모두 다. 저는 상관 없어요.

 살짝 긴장한걸까, 그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다 말해버렸다. ... 아, 죄송해요. 미루도 말할게 있을텐데. 편히 말해주실래요?




...

 그의 말이 어땠던간에 그와 함께 밖을 거니는 건 이전부터 결정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신과 함께 익숙한 길을 걸어간다. 당신과 함께 매일매일 지나쳐간 길을 걸어간다.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거리의 상점가는 아직 전부 열려있지 않다는 점, 아니면 열리는 도중이라는 점.

 아침부터 당신과 함께 한다. 지금 이 기분은 그를 만난 직후부터 어제까지 자연스럽게 느낀 감각이다.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당신과 같이 있고 싶어요. 당신의 곁에 계속 있고 싶어요. 헤어지기 싫어요, 저는 당신과 헤어지기 싫어요. 같이 있을래요. 같이 있고 싶다고 떼쓰고 싶어요. 억지로 한 자리에서 버티고 싶어요.





미루, 우리 잠시 쉬다가 가요.

당신과 함께 더 대화하고 싶어요.


미루, 우리 잠시 멈춰서 쉬어요.

당신의 곁에 더 있고 싶어요.


미루, 우리 잠시 이 상태로 있어요.

조금만이라도 더 이렇게 있어주지 않을래요?






미루,

 당신과 함께 가로수를 거닐었어요, 해는 슬슬 중천까지 오르려고 해요.

 당신과 함께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해는 이제서야 조금씩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하겠네요.

 당신과 함께 상점가를 돌아다녔어요, 어느덧 해는 고개를 살짝만 들어도 보이는 높이예요.

 당신과 함께 아무도 없는 숲길에 들어갔어요, 해는 이제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고 하나봐요.

 당신과 함께 아무도 없는 숲길 속에서 걸음을 멈췄어요, 해는 모습을 감추고 강렬한 색채만을 하늘에 띄우고 있네요.

 미루, 땅거미가 지고 있어요. 구름에 비춰지는 색색깔이 당신을 닮은 붉은빛이에요, 당신을 사랑하기 시작하며 좋아하기 시작한 색깔이에요. 분명 저와는 정반대인 색임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 제 감정을 단어로 표현하자면 행복과 기쁨이라고 생각해요. 미루와 함께 있는게 일상 속의 커다란 행복, 미루와 함께 대화하는 것 자체가 제 일상 속의 거대한 기쁨.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시간은 지나갔고, 우리들이 헤어질 시간은 다가오고 있어요. 우리들은 오늘 밤 헤어질거에요. 우리는 지금을 마지막으로 이별하게 되겠죠. 우리의 사별은 피할 수 없는 미래이고 확정된 것이며, 살짝이라도 굽힐 수조차 없는 선택인거죠?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할 수 없는 우리의 안녕의 이후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곧 있으면 안녕이라는 이별인사를 하겠죠. 아니면 작별인사라고 해야 할까요? 어쩌면 잘가라는 사별인사를 말할지도 몰라요.
















 "미루, 이제 시간이에요."


 평소와 같은 자그마한 미소를 띄우며 그를 향해 말했다. 친근한 미소, 상냥한 미소, 아름다운 미소, 서글픈 미소, 밝은 미소, 베시시 웃으며 볼을 살짝 붉힌다. 어쩔 수 없다, 이전처럼 웃고 있는 그는 '그'가 좋으니까. 어쩌다가 이렇게 감정이 깊어진지도 몰랐다. 하지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제가 맞춰볼게요, ... 아무것도 아니겠죠. 설령 어한 의미가 있더라도 살기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희생시킬 수 있는 존재일거에요. 그는 그저 그렇게 확정짓고 생각했다.

 당신의 생각보다는 잔잔한 끝일거에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타인에 비해서 차갑다고 느껴질, 과장시키면 얼음장인 몸으로 '그'를 끌어안았다. 그는 아마 마지막으로 느낄 수 있는 '그'의 온기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당신이 제 차가움을 느낄 것도 마지막이에요. 앞으로는 따뜻함과 뜨거움만 느낄 수 있다면 좋을텐데.









 "미루, 저는 당신을 죽일거에요."


 천천히 몸을 떨어트린다. 얼음 그 자체인 그는 손을 서서히 들었다. 그의 손에서는 말 그대로의 얼음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위협으로 끝내자, 그가 자신을 공격할 때까지, 그가 자신의 급소를 칠 때까지 조금씩 위협만 하자. 그가 스스로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생각되게 위협하자. 주위와 함께 얼릴 각오로 한기를 뿌리자 주위 바닥과 함께 그의 신체의 일부분에 서리가 낀다. 목숨의 위협을 느껴요, 미루. 그리고 얼음을 부서트려요.


 "검을 들어요, 미루. 진심으로 나오지 않으면 죽을거에요."


 전기는 제게 통하지 않아요. 평소의 진심된 미소를 가린 채, 아무런 감정 하나 담기지 않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그의 공격을 기다린다. 그가 움직이길 기다린다. 그가 나를 공격하길 바란다. 어서 들어와요. 어서 이리로 와요. 당신은 반드시 저를 공격해야만 해요. 당신은 반드시 저를 공격할거에요. 당신은 기필코 저를 베어내고야 말겠죠. 당신은 생존을 우선시할거야. 제가 아는 당신이라면 그럴거에요. 그렇지 않다 해도 그래야만 해요.

 저는 일개 얼음 덩어리에요. 누구에게나 있는 생명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얼음에게 정을 주다뇨,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예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는 얼음 덩어리에게 사랑을 주다뇨, 바보같아요. 저는 어디에나 널려있는 얼음이에요. 정을 끊는 것 쯤이야 숨쉬듯이 쉬워요. 왜 당신은 그걸 모르는 걸까.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하는걸까?


 아슬아슬하게 피하도록 얼음창을 던진다. 애매하게 닿지 않도록 서리를 뿌린다. 혹시나 닿았더라도 신체에 영향은 없다. 그저 얼음이니까, 그저 차가울 뿐인 얼음이니까.

 설령 당신이 급소를 노리지 않은 공격이라 해도 우연인 마냥 일부러 맞는다. 의도적으로 자신이 일반적인 얼음이라는 걸 알린다. 응, 맞아요 미루. 당신의 눈동자에 비춰지는 얼음이 바로 저예요. 그거에요.


 "그러니 반드시 저를 베어내서 살아요."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애초에 그가 얼음을 만들어내며 나오는 쩌적이며 갈라지는 소리에, 모든 음성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 조차 불가했지만.













 "미루, 미루는 제가, ...을 잃기를, 바라나요?"



 당신의 대답에 따라서, 저 다음의 '카사엘'이 결정될거에요, 미루. ... 대답해주세요. 저는 확정을 짓고 떠나고 싶어요.

 미루, ... 미루, 괜찮아요. 그저 당신의 진심이 듣고 싶을 뿐이에요.


 미루, 제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세요.

그러면 '제'가 당신 곁에 있는건 끝이에요.




 당신이 어떤 대답을 한다 해도,

 ... 알겠어, 미루.

 그렇게 답할거에요.

 다시 태어나는 '저' 다음의 '카사엘'이 어떤 '기억'을 가지고 태어난다 한들, 카사엘에게 있어서는 신년과 함께 새로운 날의 시작일거에요. 제가 사라진 후 태어날 카사엘의 탄생일일거에요.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지금의 카사엘'은 부서지고 어둠속으로 바스라져 사라질 운명이니까요.


 더 이상 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뭐라고 정의할 수도 없게 되어버린 저이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저는 당신을 아껴요. 그렇기 때문에 위협이라는 선택지밖에 고르지 못했어요. 당신에게 좋지 않은 추억을 만들어서 미안해요.


 그렇기에야말로 미루가 원하는 대로 할거에요.


 저 다음의 카사엘의 기억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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